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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rent affairs/connecting society stories

최악이라고 평가받는 노벨상 수상자들

by connecting story 2024.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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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이라고 평가되는 노벨상 수상자들

 

 

이전 포스팅에서 노벨상에 대해 살펴봤다.

https://connectingstory.tistory.com/92

 

노벨상의 역사와 영향력

지난 10월 7일부터 10월 14일까지 2024년 노벨상 수상자들을 발표한다. 오늘 시점으로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발표했고 남은 기간 동안 문학상, 경제학상, 평화상 수상자들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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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노벨상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노벨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상이다. 따라서 노벨상은 인류의 발전과 평화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하지만 일부 노벨상 수상자들은 그들의 업적이 과학적 또는 의학적 연구에서 혁신을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윤리적 문제나 인간의 고통 등 인류에게 큰 피해를 주기도 했다.

 

1. 프리츠 하버 (1918년 노벨 화학상)

프리츠 하버는 1918년에 하버-보쉬 법을 개발한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이 과정은 질소를 대기에서 추출하여 암모니아로 전환하는 방법으로, 이는 비료 생산에 혁신적인 기여를 했고, 전 세계의 농업 생산성을 크게 증가시켜 인류의 오랜 염원이었던 식량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그러나 하버는 제1차 세계대전 중 화학무기 개발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그는 독가스(염소가스)를 전쟁에서 사용하는 것을 지휘하며 많은 군인과 민간인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다. 하버는 이러한 군사적 성과로 독일 정부로부터도 인정받았지만, 그의 연구가 전쟁에서 잔혹하게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인류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실 지금도 하버에게 수여한 노벨상을 다시 회수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있다.

 

2. 알렉산더 플레밍 (1945년 노벨 생리의학상)

영국의 세균학자인 플레밍은 리소자임과 페니실린을 발견한 공로로 에른스트 보리스 체인, 하워드 플로리와 함께 1945년 노벨 의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발견은 세균 감염 치료에 혁신을 가져왔고,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했다.

 

플레밍의 연구 자체는 인류에게 큰 이익을 주었으나, 항생제 남용 문제가 이어지며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항생제 남용으로 인해 항생제 내성균(슈퍼박테리아)이 등장하게 되었고, 이는 현대 의료에서 중요한 위협이 되고 있다. 플레밍 자신도 항생제 남용의 위험을 경고했지만, 그 이후의 남용은 인류에게 심각한 도전 과제가 되었다.

 

3. 폴 뮐러 (1948년 노벨 생리의학상)

사실 DDT (Dichloro Diphenyl Trichloroethane) 는 오스트리아의 화학자 자이들러가 1874년에 처음으로 합성했지만 살충효과가 있는지는 몰랐다. 연구소에서 살충제를 연구하던 뮐러는 DDT라는 합성물질이 곤충의 신경을 마비시키는 성질이 있음을 발견하고 1941년 유기염소제인 DDT를 특허 출원하고 1942년부터 시장에서 판매했다. 살충효과가 뛰어난 DDT라는 살충제를 개발한 공로로 1948년 노벨 의학상을 수상했다. DDT는 말라리아, 발진티푸스, 이질 등 여러 질병을 옮기는 모기를 퇴치하는 데 사용되어, 전 세계적으로 500만 명 이상의 많은 생명을 구했다. 특히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각종 전염병에 시달리던 미군들에게 DDT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선물이었다. 

 

그러나 DDT가 대량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DDT는 환경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인간을 포함한 생태계 전체에 오염을 일으켰다. DDT의 사용은 곤충뿐만 아니라 조류, 물고기, 심지어 인간에게도 축적되어 건강에 악영향을 미쳤으며,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용이 금지되었다. 뿐만 아니라 저항력을 키워 해충의 종류가 DDT 사용이후 65종으로 늘어났다. 그로 인해더 강한 살충제 개발을 부추겼다. 뮐러의 수상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지만, 후에 그로 인한 환경 피해가 밝혀지면서 비판받게 되었다.

 

4. 안토니오 에가스 모니즈 (1949년 노벨 생리의학상)

모니즈는 전두엽 절제술을 개발한 공로로 발터 헤스와 함께 1949년에 노벨 의학상을 받았다. 모니즈는 분열증, 편집증과 같은 일부 정신병에서 정상적 정신과정을 억압하는 사고 양태가 나타난다는 것을 알아낸 뒤 전두엽과 시상을 연결하는신경섬유를 자르면 비정상 사고 양태가 보다 정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당시에는 정신질환 치료법으로서 전두엽 절제술이 혁신적이라고 평가되었다.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심한 충격을 받은 군인들에게 전두엽 절제술이 남용되었고 수슬의 후유증으로 고등 정신 기능이 약화되었다. 즉 전두엽 절제술은 정신질환 환자들에게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부작용을 초래했으며, 많은 경우 환자들이 영구적으로 무기력하거나 심지어 죽음에 이르게 했다. 현대 의학에서는 이 수술이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간주되며, 그로 인해 수많은 환자가 고통을 겪은 것으로 평가된다. 모니즈의 수상은 노벨상 역사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사례 중 하나이다. 이 수술법은 비인도적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약물 치료법이 개발된 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5. 윌리엄 쇼클리 (1956년 노벨 물리학상)

MIT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벨 연구소에 입사한 후 윌리엄 쇼클리는 트랜지스터 발명에 기여한 공로로 윌터 브래테인, 존바딘과 함께 1956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트랜지스터는 현대 전자기기와 컴퓨터의 핵심 기술로, 정보화 사회의 발전에 기여한 혁신적인 발명이다.

 

그러나 쇼클리는 노벨상을 수상한 이후 우생학을 강력히 주장하며 인종적 차별을 옹호했다. 자신의 회사인 쇼클리 반도체를 운영하면서 직원들에 대한 갖은 횡포와 편집증적인 경영 스타일로 인해 회사는 추락을 하게 된다. 또한 인종별 평균 IQ를 내세워 흑인이 유전자적 열성에 속한다거나 전 인류의 질적 향상을 위해 IQ검사를 통해 100이하인 사람들은 불임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특정 인종이나 계층의 사람들이 유전적으로 열등하다고 주장하며, 강제적인 불임 시술 등을 제안하는 비윤리적인 사상을 퍼뜨렸다. 쇼클리의 이러한 주장은 사회적 갈등과 인종 차별을 조장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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